우울, 가을탄다. 이 느낌?
우울한 이 느낌은 가을이라서 인가? 아니면 우울한 마음이 가을 때문에 드러난 걸까?
왠지 오래도록 익숙한 듯한 이 느낌은 대학교 1학년 첫 가을에 다가왔었다.
따스한 햇살이 내리쪼이는 한가로운 버스 창가에 앉아 나는 멍하니 스쳐지나는 가을 들녘을 바라보았다.
그냥 스쳐지나는 들녘엔 이미 황금빛으로 물들여진 고개숙인 벼들이 수북이 채워져 있었다.
우울한 느낌은 그 순간에 훅 올라와 한참을 머물며 나를 흔들었다.
왜 그런 우울감이 밀려왔던 것일까? 불교의 화두처럼 그 우울감은 가을을 지나 시린 겨울까지 '이뭣꼬'를 물었다.
왠지 한해가 다 지나가버린 그런 느낌, 나는 뭘했는지, 나는 누구인가?와 같은 개똥철학같은 고민에 빠져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젊디젊은 시간을 보냈었다.
그건 우울증하고는 다른 어떤 것이었다고 기억된다. 마치 인생을 알아가는 좋은 추억같은 그런 것, 그래도 그 진지한 고민이 아직도 그립다.
가을은 따스한 햇살을 내리쪼여 만물을 영글게 한다. 나는 영글었는가?
저 벼이삭처럼 고개숙여 지난 봄과 여름의 긴 시간을 돌아볼만큼 나는 영글었는가?
그래서 아직도 우울한 것은 아닐까? 왠지 저 마음 밑바닥에서 '너 아직 갈길이 멀다'는 정직한 느낌은 뭘까?
세월을 그렇게 보내왔어도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더 가야하는 인생길, 그 끝은 어디인가?
가을은 이런 저런 이유로 가끔씩 우울한 계절인가보다.
우울은 가을이어서가 아니라 인생을 돌아보라고 오는 건가보다.
이런 저런 이유를 찾아 합리화를 하며 또 이 가을을 위로해본다.
코스모스 피어있는 길을 걸어보리라 생각하며 아직도 가야할 먼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리라
우울, 우울감은 그냥 벗이려니, 오래 사귄 그 녀석처럼 함께 걷다보면 이쁜 꽃도 있으니까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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